저자 마이클 고먼
요한계시록 바르게 읽기
요한계시록은 오랫동안 나에게 넓은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 같은 망막함과 함께 비밀의 옷장 문을 열고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을 동시에 주었었다. 궁금하기는 하지만, 엄두를 낼 수 없었던 책. 한편으로는 이 비밀의 책은 왠지 비밀 그대로 내버려 둬야 할 것 같은 생각을 가지기도 했었다. 아마도 이러한 생각은 요한계시록에 대한 내 개인적 편견과 오해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한국 교회로부터 습득해 온 요한계시록에 대한 지식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겠다.
요한계시록을 마치 판타지 만화나 소설처럼 선이 마침내 모든 악을 물리치고 평화를 가져오는 해피엔딩으로 이해하거나, ‘휴거’ 나 ‘666’과 같은 단어와 함께 다가 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주입식 교육’을 받은 많은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고먼은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마치 훼손된 명화를 섬세하게 복원해 가는 화가처럼, 저자는 일반적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요한계시록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오해로부터 새로운 시각으로 요한계시록을 읽어가도록 격려한다.
본인은 고먼의 책과 함께 이병학의 ‘약자를 위한 예배와 저항의 책, 요한계시록’을 병행해서 읽었다. 큰 울타리 안에서 고먼과 이병학의 관점은 맞닿아 보이며, 두 책 모두 ‘지금, 이곳에서’를 강조하다 보니, 삶에 대한 적용도 세밀하고 풍부한 점도 닮아있었다.
또한 요한계시록이 쓰여질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배경 아래에서 계시록을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과 정치-신학적 관점도 유사해 보였다. 특히 고먼은 요한계시록이 정치권력, 군사력, 경제력이라는 ‘시민종교’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시민 종교의 대안이 되는 길로서 죽임 당하신 어린양이 보여주셨던 또 다른 길을 말과 행동으로 증언하라는 도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던지고 있다고 강조한다.
“시민 종교를 거부하는 예배와 증언”, 곧 “어린양을 따라 새 창조로 나아가다”라는 부제는 이 책의 핵심 내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하겠다. 본 서평에서는 이 책의 내용을 우선 짧게 요약하고, 이어서 이러한 요한계시록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적용해 보고자 한다.
요약
1장에서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요한계시록과 관련되어 가지고 있는 오해들, 즉 종말, 휴거, 적그리스도, 666 등에 대해 사실은 요한계시록에 나오지도 않거나, 요한계시록의 중심 내용이 아닌 내용들로부터 가지게 되는 두려움, 혼란, 공포와 의심의 감정들을 가지지만, 사실 요한계시록은 우리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세상과 관련하여 어떤 언식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놓고 펼치는 생각을 바꿔놓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2장과 3장에서는 요한계시록의 형식과 내용을 살펴보았다. 요한계시록은 형식적으로는 묵시, 예언, 회람 목회 서신의 기본 가운데 더 많은 형식이 섞여있다. 내용적으로는 현실에 순응한 교회에는 도전을 던지고, 핍박받는 교회에게는 위로를 전한다. 요한계시록은 신학 시적이고 신정적인 텍스트로서,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이루어질 하나님과 죽임 당하신 어린양(그리스도)의 통치, 제국과 시민 종교를 겨눈 강력한 비판, 그리고 신실하게 저항하고 삶으로 예전을 표현하는 복음을 전할 소마을 가진 공동체 안에서 어린양을 따르라는 도전을 던지는 권면을 환상에 담아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전해준다.
4장에서는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다양한 접근법과 그에 따른 텍스트에 대한 여러 오해와 실수들을 소개하며, 저자는 대안으로 십자가를 본받는 해석 전략을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이런 해석 접근법은 첫째, 요한계시록에서 가장 중요하고 중심에 있는 이미지가 죽임 당하신 어린양이심을, 둘째, 요한계시록은 무엇보다 1세기 그리스도인이 1세기 그리스도인을 염두에 두고 1세기의 문학 도구와 이미지를 사용하여 기록했음을, 셋째, 요한계시록을 역사를 미리 기록해 놓은 책처럼 여기면서 문자적, 직선적 접근법으로 접근하는 것에 경고하며, 요한계시록과 이 시대를 소로 연계하기보다 양자를 유비하는 해석 전략을 활용할 것을, 넷째, 공중 가운데서 예배하고 제자도를 실천하라는 요한계시록의 요구에 초점을 맞출 것을, 다섯째,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죽음과 파괴의 이미지를 더 큰 소망의 틀 안에 놓고 볼 것을 독자들에게 격려한다.
5장에서는 요한계시록이 우리에게 주는 일곱 가지 목회와 예언의 메시지를 소개한다. 요한계시록은 독자들의 호기심을 만족시켜주려고 장차 일어날 사건을 묘사한 책이 아니라 우선적으로 계명에 신실하라는 요구이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 를 밝히 살펴 회개하고 제자의 길을 가라는 메시지를 담은 책이다.
2-3장을 중심으로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낸 이 본문을 통해, 우리는 교회가 당면한 두 가지 큰 문제, 즉 여러 종류의 핍박과 현실에 순응하라는 강력한 유혹의 문제를 직면하게 되고, 그에 따른 메시지, 즉 그리스도의 바른 가르침과 바른 실천이 충만한 교회, 신실함이 가득하고 두려움이 없는 교회, 국가가 아니라 예수를 섬기는 교회, 부유한 자보다 가난한 자를 더 마음에 두는 교회를 그리스도가 원하신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된다.
6장에서는 요한계시록의 중심이요 초점인 환상, 즉 하나님과 어린양에 관한 내용이다. 저자는 요한계시록의 중심에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며,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 우리가 그에 대해 어떤 이해를 가지고 있는지 질문해 온다.
즉 창조주 하나님은 통치하시며, 우리로부터 완전한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시라는 것과 또한 신실하고 죽임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역시 하나님과 함께 통치하시고, 하나님과 똑같이 우리로부터 완전한 예배를 받기에 합당한 분이시라는 것이다.
7장은 요한계시록이 가지고 있는 드라마적 구성 요소와 내용으로 본문을 조명해 보았다. 기본적으로는 우주라는 무대에 사탄의 활동과 선지자의 예언, 그 뒤를 잇는 하나님의 심판과 새롭게 하심이라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알파와 오메가요, 보좌에 앉아계신 거룩하고 정의로우신 하나님, 그리고 어린 양이요 신실한 증인이신 그리스도, 예언과 선교의 영이신 성령이시다. 이 주연들에 맞선 상대역으로는 거룩하지 않은 삼위일체와 창기, 한 용과 두 짐승이 등장하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교회 된 그의 백성들이 등장한다.
8장은 요한계시록 6-20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주는 환상들을 다루고 있다. 악을 심판하는 요한계시록의 환상은 하나님이 하시는 행위를 묘사한 것이라기보다 상징으로 이해해야 한다. 또한 심판 환상은 하나님이 인류사에서 마지막으로 하시는 행위라기보다 마지막 행위 전에 하시는 상징이다. 즉 심판은 종말에 이르는 방법이요, 목표는 종말에 있을 구원이며,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심이다. 마지막으로 요한계시록의 길고 세세한 심판 환상이 1차로 염두에 둔 대상은 “바벨론”이 아니라 교회다.
9장은 새 하늘, 새 땅, 새 도시의 마지막 환상을 요한계시록 21-22장을 중심으로 그리고 있다. 요한계시록 21-22장은 신약 성경의 정점으로서 나사렛 사람 예수 안에서 나타나신 하나님이 이제는 인류 가운데 영원히 거하시는 하나님과 어린양으로서 영원무궁토록 다시 나타나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의 오심과 삶과 죽음과 부활에서 시작한 하나님의 통치가 완전히 이루어지며, 이를 상징하는 것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다.
요한계시록은 새 예루살렘과 어린양의 신부인 하나님의 백성, 곧 승리를 거든 신실한 이들을 동일한 존재로 본다. 여기에서는 실제 성전 대신 하나님과 어린양이 항상 성전이시다. 또한 새 예루살렘의 크기는 그곳에 거주하는 이들의 충만함을 나타낸다.
10장은 어린양을 따라 살아야 할 그의 백성들의 영성에 관해 말한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역사의 종말을 다룬 기록이라기보다 하나님과 죽임 당하신 어린양의 통치에 초점을 맞춘 신학 시이자, 하나님의 통치를 다룬 기록이며, 목회, 예언의 관점에서 쓴 기록이요, 성령이 지금도 교회에 하시는 말씀으로 읽게 될 때, 우리가 소유하게 되는 것은 신정과 예언과 선교의 영성이요, 시민 종교를 거부하는 예배와 증언의 영성이다.
이 영성은 예배, 분별, 시각 그리고 상상력, 신실함과 선지자 같은 저항, 자아비판, 십자가를 본받아, 용기 있게, 그러나 폭력을 쓰지 않고 벌이는 전쟁, 사람들 사이에서 온몸으로 실천하는 증언과 선교, 소망과 같은 주요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삶의 무대에서 요한계시록 바르게 살아내기
요한계시록은 적그리스도가 아닌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이야기한다. 요한계시록은 이 세상을 벗어나는 휴거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신실한 제자로 살아가야 할 제자도를 이야기한다. 즉 요한계시록도 신약 성경의 다른 모든 책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이야기하는 책이요, 순종과 사랑으로 그분을 따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고먼은 그리스도인이 제국과 우상 숭배에 맞서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과 성도들과 선지자들과 순교자들이 보여준 모범과 닮았으며, 이 모범은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이며, 오직 하나님께만 충성하겠다고 맹세하는 공동체와 개인, 벗은 물론이요 적에게도 폭력을 쓰지 않고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는 공동체와 개인, 그리고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 죽음을 안겨주는 제국의 문화에 맞선 대안으로 생명을 가져다주는 미니 문화를 만들어내는 공동체와 개인을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따라, 우리 시대의 시민 종교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정치와 비폭력과 선교와 예언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살아낼 것을 격려하면서, 보고 듣고, 예배하고 증언하며, 나와서 저항하고, 어린양을 따르는 삶을 살아내라고 제시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21세기의 대한민국이라는 곳에서의 제국과 시민 종교는 아마도 신자유주의, 계층의 양극화, 물질만능주의 등의 이름이 되지 않을까 싶다. 신자유주의는 세계화의 진행과 함께 이미 2천 년대에 들어서서 진행되어 왔지만, 대한민국에서 계층의 양극화는 지난 십여 년 사이에 급격히 진행된 것 같다. 빈익빈 부익부는 경제뿐만 아니라, 그에 기반한 모든 기회, 교육과 복지 혜택에 이르기까지 이르러 철저한 양극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교회는 이러한 세력에 저항하며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오히려 현실에 순응한 모습으로, 더 나아가 철저하게 야합하는 부끄러운 모습들을 보여 왔다. 또한 이 시대의 소외된 계층을 향한 교회의 적극적 관심과 행동들은 참으로 미비하다.
요한계시록은 신실하게 저항하고 삶으로 예전을 표현하며 복음을 전할 소망을 가진 새로운 대안공동체를 건설해 갈 것을 우리에게 도전한다. 그것이 아마도 우리 안에 이루어지게 될 ‘새 예루살렘’이 아니겠는가? 쉽지는 않겠지만 어린양 예수를 따라 그 길을 갈 수 있기를 소망하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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